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칭기스깐학습법/ 육아 체험 사례

마음의 그릇에 정이 넘쳐

by 법천선생 2011. 12. 15.

마음의 그릇에 정이 넘쳐
[공영실의 교단에서]
2011년 09월 14일 (수) 20:54:08 지면보기 12면 중부매일 jb@jbnews.com
   
"선생님, 저 5천원만 꿔주세요."

올해 무던히도 나를 힘들게 하는 우리 반 K다. 못받을 돈인 줄 알면서도 순순히 내주는 나에게 옆자리 선생님이 오히려 걱정을 해준다.

"선생님, 받지도 못 할 돈을 왜 주세요. 어휴, 저번에도 그러시더니, 선생님이 다 받아주니 쟤가 더 그러잖아요."

그 선생님이 보기에도 내가 참 한심해 보였나보다.

맨발로 다니는 K에게 슬리퍼를 내주었고, 병원비를 주고, 안경값을 주었다. 명찰을 잃어버려서 교문 밖에서 발만 동동 구르고 있는 것이 불쌍해서 명찰을 맞춰주고, 오늘은 미술 준비물 구입할 돈을 준 것이다.

1천500원이 없어서 병원을 못 갔다는 K 엄마의 말을 듣고는 더 이상 나 몰라라 할 처지가 아니었다. 공사장 막일을 하는 부모님과 5남매가 보증금 1천만 원에 월세 20만 원 짜리 집에서 북적거리며 산다는 것이다. 덩치도 크고, 한 박자 느린 행동으로 반에서도 친하게 지내는 친구가 없다. 그게 늘 신경이 쓰이는데, 본인은 괜찮다고 하니 참 다행이다. 쉬는 시간이나 점심시간에 내게 와서 허황된 이야기를 늘어놓는 것을 듣고 있자면 쌓인 공문을 처리하느라 안 그래도 바쁜데 짜증이 날 때도 있다.

이쯤 되면 내 속에서 갈등이 일어난다. 쟤는 어쩜 저렇게 뻔뻔할까? 해도 해도 끝이 없네. 이제부턴 단호하게 잘라야지. 아니다. 내가 담임인데 가정형편 어려운 반 아이를 나 몰라라 하는 것은 담임 자격이 없는 거다.

결국, 아이들을 직업적으로 대하는 교사가 아니라 아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줄 수 있는 교사가 되어야 한다고 결론을 내린다.

추석 때, 시댁과 친정에서 바리바리 싸온 명절 음식을 보며 제일 먼저 K를 떠올리는 나. 이걸 갖다 줘도 되나, 갖다주면 맛있게 먹을텐데…. 전화를 해도 안 받는 K에 대해서 5천원 꿔간 게 미안해서 피하나 보라고 내 멋대로 결론을 내리고, 내일은 명절 음식을 챙겨서 K에게 가져다 줘야겠다고 다짐한다.

나는 아이들 성적을 쑥쑥 올려주는 능력 있는 교사도 반 아이들을 휘어잡는 카리스마도 턱없이 부족한 교사이다. 하지만 마음의 그릇에 정이 넘쳐서 나보다 어렵고 힘든 아이들에게 아낌없이 퍼줄 수 있는 그런 교사가 되고 싶다.

하지만 간혹 정을 쏟았던 아이가 배신감을 줄 때도 있다. 작년에 우리 반 아이가 얼굴과 팔뚝에 시퍼렇게 멍이 들어서 학교에 온 적이 있다. 졸업생 언니가 불러내서 돈을 안 가져왔다고 뺨과 팔뚝을 수십 차례 때렸다는 것이었다. 후한이 두려워서 얘기를 못하는 아이를 달래서 졸업생이 누구인지 알아내고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 학생은 다름 아닌 작년 우리 반 아이였던 것이다. 무단결석과 학생 폭력으로 학교 골칫덩어리였던 그 아이를 3학년 때 담임을 하게 되었는데. 진심이 통했는지 무단결석 한 번 안 하고 졸업을 해주어서 무척 고맙기까지 했던 녀석이었다. 성적도 제법 오르고 고등학교 가서 열심히만 해주면 앞으로 더 나은 삶을 살 거라고 생각했는데, 말짱 도루묵이 돼서 나타난 것이었다. 그럴 때면 내가 교사로서 정말 옳은 행동을 하는 것일까 괴로워한 적도 많았다.

하지만 결론은 그래도 그 아이들을 이해하고 도와주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가정에서도 방치하고 학교에서도 인정해주지 않는 학생들에게 조금이나마 힘이 될 수 있다면 그 정도의 상처쯤은 감수해야 하지 않을까? 옛말에 '교육은 백년지대계'라고 교육적 효과는 금방 나타나는 것이 아니다. 비록 교육철학이 지금 당장은 빛을 보지 못하지만 훗날 남을 배려하고 이해하는 마음이 후대까지 전해져서 아름다운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다. / 충북여중 교사

kys73111@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