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칭기스깐학습법/ 육아 체험 사례

퍼온 글, 10대가 아프다

by 법천선생 2011. 12. 16.

'모든 불행의 근원은 부모 때문이야'라고 생각했다. 엄마는 가출을 일삼던 아빠와 10년 전 이혼했다. 엄마는 늘 일을 하러 나가 밤늦게 돌아오곤 했다. 선주(17·가명)는 인문계 고등학교를 포기하고 실업계 고등학교에 들어갔다. 선주의 꿈은 학교 선생님이었다. 사범대학에 진학하고 싶었다. 실업계 고교라도 열심히 공부하면 원하는 대학에 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현실은 달랐다. 과목부터 인문계와 달랐다. 게다가 혼자 입시 공부를 할 수 있는 분위기도 아니었다. 따돌림당하지 않으려면 아이들과도 어울려 놀아야 했다. 성적이 좋을 리 없었다. 학원에 다니고 싶었지만 밤늦게 녹초가 돼 귀가하는 엄마를 보면 그 말이 차마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상위권이던 성적은 중간 수준으로 떨어졌다.

어느 날 엄마가 돌아오길 기다렸다가 고민을 털어놓았다. 반응은 너무 냉담했다. 엄마는 "나도 너무 힘들다. 나도 너만할 때 그런 고민 했었다. 네가 강하지 못해서 그런 것을 누굴 탓하는 거냐"며 방으로 들어가버렸다. 반 친구들 역시 고민을 털어놓을 상대가 되지 못했다. 하루종일 연예인 이야기나 하고 놀 궁리만 하는 아이들이 사범대에 진학하고 싶은 자신의 고민을 들어줄 리 없다고 생각했다. 실업계 고교 진학을 선택한 자신이 원망스러웠고, 그런 선택을 하게 만든 엄마가 싫었다. 그때부터 선주는 자살을 떠올렸다. 스스로 목숨을 끊을 용기는 없었다. 교통사고가 나거나 지하철 선로로 떨어졌으면 했다. 그럴 때마다 힘없이 집에 들어오는 엄마의 뒷모습이 눈에 밟혔다. 엄마는 애증의 대상이었다.

매일 밤 잠든 뒤 죽기를 빌었다. 선주는 '왜 죽지도 못할까.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체가 된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를 상상하다 학교도 가지 않고 종일 침대에 누워있기도 했다. 약을 사 모으고 숨을 쉬지 않기도 했다. 하지만 죽을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렇다고 살아갈 용기도 없었다.

선주에게는 자신의 고민을 들어줄 사람이 없었다. 엄마는 밥 해주고 학교 등록금 내주는 것만으로도 벅차했다. 속에 있는 말을 다 털어놓을 사람이 한 명만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때마침 서울시 청소년 상담지원센터가 눈에 들어왔다. 용기를 내 전화를 걸었다. 선주는 상담원에게 "매일 죽고 싶다는 생각밖에 없다. 살아갈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상담원은 선주에게 "직접 만나서 좀 더 자세한 이야기를 듣고 싶다"고 말했다. 누군가 자기에게 관심을 가져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 반가웠던 선주는 그 다음날 센터를 찾았다.

선주는 "모든 것이 망가졌다. 인생을 되돌리고 싶은데 그게 안된다. 죽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어보인다"고 하소연했다. 속에 있는 말을 모두 쏟아내자 시원했다. 상담원은 엄마가 바쁜 이유 등을 물었다. 대답하는 과정에서 그동안 엉켜있던 생각이 정리되기 시작했다. 내가 힘든 것 이상으로 엄마도 많이 힘들텐데 너무 내 생각만 한 것은 아닐까하는 반성도 들었다. 엄마와 마주보고 대화하고 싶어졌다. 상담원 역시 엄마를 만나보고 싶어했다. 엄마는 센터를 찾아왔지만 상담을 거부했다. 가정을 꾸리는 일만도 힘든데 자신이 잘못됐다는 것을 인정하기도 싫었고, 딸에게 비난을 듣기도 싫었던 것이다.

선주는 엄마의 태도에 실망했다. 하지만 죽음을 떠올리기보다 긍정적인 마음이 생겼기 때문에 엄마를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선주는 상담원이 시키는 대로 말하고 행동하기 시작했다. 늘 습관처럼 하던 '짜증나'라는 말부터 하지 않기로 했다. 그리고 엄마 앞에서 목소리 톤을 높이지 않기, 엄마에게 '고맙다'는 말을 하루 한 번 이상 하기 등을 행동에 옮겼다. 여전히 엄마는 무뚝뚝했고, 무관심했다. 하루 이틀이 지나도 엄마는 '피곤하니까 저리 비켜'라고만 했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았다. 선주가 센터를 찾은 지 10개월여 만인 어느날 엄마가 선주에게 "같이 상담을 받으러 가보자"고 말했다.

마음을 연 엄마는 상담원에게 속내를 털어놓았다. "남편도 없이 생계를 책임져야만 한다는 의무감과 과중한 업무에서 오는 피로감 때문에 딸에게 화를 냈다. 선주만 없었더라면 지금쯤 다른 인생을 살 수 있지 않을까라는 원망도 했다"고 말했다. 또 "딸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존재라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 고된 일상에 치여 따뜻한 말 한번 건네지 않아 아이가 많이 힘들었을 것"이라며 눈물을 흘렸다. 선주는 말없이 엄마를 끌어안았다. 모녀는 손을 잡고 센터를 나섰다. 그리고 처음으로 함께 찜질방을 다녀왔다.

엄마를 되찾고 심리적으로 의지할 곳이 생긴 선주는 다시 학교생활에 적응해나가기 시작했다. 사범대는 가지 못했지만 자신이 원하는 학과가 있는 대학에 진학했다.

■ 특별취재팀= 류인하·박효재·곽희양·이재덕·이혜인·배문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