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 매 안 드는 엄마가 되리라 다짐했다.
그 결심이 무너진 건 아이가 초등학생 때였다.
몇 번 '가볍게' 손을 대다 급기야 터졌다.
책을 집어던지고 손바닥으로 후려쳤다.
발길질까지 해댔다.
너무 놀라 울지도 못하는 애를 남겨놓고
방문을 쾅 닫았다. 죽고 싶었다.
이후에도 한두 번 그런 일이 있었다.
정말 안 되겠다 싶어 멈춘 뒤에도
독설마저 제어하진 못했다.
아이에게 가장 아픈 말이 뭔지 골몰하며
내뱉는 내가 악마 같았다.
그런 행동이 사랑도, 교육도, 정말 뭣도
아니란 걸 뼈저린 후회로 깨달은 지 몇 년 안 됐다.
아이는 말했다.
"엄마가 언제 얼마만큼 화낼지 몰라 힘들었다"고.
변명거리가 왜 없을까. 거짓말해서,
숙제 안 해서, 지갑에 손을 대서. 한데
"다 자식 잘되라고 했다"는 그 폭언과
폭행이 정말 아이를 위한 것이었나.
나도 돌아가신 내 어머니도 실은
제 생각부터 했던 거다. '내가' 화나고
'내가' 창피하고 '내가' 힘들어서.
뭣보다 만만하니까.
폭력에 시원(始原)이 있다면
그 첫 가해자는 부모일 거다.
아이는 도망칠 곳이 없다.
이해할 수 없는 부모를 이해하기 위해
자신을 더 나쁘고 가치 없는 존재로 던져 버린다.
감정을 조절하기 힘들어진다.
힘 있는 자를 거스르면 맞는 게
당연하다고 믿게 된다.
폭력 청소년이 되고 폭력 부모가 된다.
'버릇 고치려' 자식을 때려 죽이는 괴물이 된다.
내가 일반 살인범보다 자식을 해친 부모에게
더 큰 벌을 내려야 한다고 믿는 이유다.
마침 다음 달부터 부부싸움 신고 때
경찰이 집에 들어가 조사하는 것이 가능해졌다.
이를 자녀 폭행 때도 적극적으로 적용해야 한다.
괴물의 탄생을 막기 위해서.
- 중앙일보 이나리 논설위원의 칼럼에서 일부 발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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