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 즉 애완견은 정이 없는 사람보다 훨씬 더
정겨운 동물일 것 같다.
필자는 어릴때 목선이라는 이름의
큰개를 키운 적이 있다.
그가 늙어 병들자 어머니가 우리들 몰래 개장수에게
그를 팔아 넘긴것 같았다.
아버지는 크게 화를 내시면서 어머니를 야단치셨고
우리들도 모두 다 슬퍼하였었다.
그런네 요즘 처럼 각박한 사회환경에서 일부의 사람들이
사람들에게서 위로받지 못한 정을 개의 헌신적인 사랑 앞에
큰 위로를 받고 정을 나누는 것 같다.
그들은 사람보다 훨씬 더 정이 많고 속일 줄도 모르며,
충성스러우며 가진 모든 정을 언제, 어디서든지
모두 다 나누어 주는 훌륭한 감정 친화적 교류 동물이다.
그러나 그들의 생명은 짧아 우리가 사는 동안 반드시
그들이 죽는 괴로움을 보아야만 한다는 슬픈 사연이
그 속에 이미 내재되어 있음은 어쩔 수 없는 현실이다.
사람이 죽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괴로움을 줄 여지도
많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얼마전 어떤 부인은 애완경의 죽음에 충격을 받고
극단적인 선택인 자살을 선택하는 경우도 있었으니 말이다.
정이 든다는 것은 이미 괴로움을 내포하고
있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렇다고 어찌 인생을 정없이 매정하게만
살 수가 있단 말인가?
이미 우리에게 감정이 있고 정이 있다면 정을 많이 쏟고
그것에 집착하지 않는 것이 오히려 훌륭한 삶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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