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 속 이반 일리치는 존경받는 판사다. 그가 평생 추구한 삶은
내가 나로 사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동경하는 귀족의 전형적인 삶’이었다.
톨스토이는 귀족의 아들임에도 ‘꼼므일포’를 싫어했다.
‘교육과 사회가 심어놓은 허위’로 봤다.
“‘꼼므일포’는 잘 정돈되고 가지런한 세련된 삶의 양식입니다.
매끈하게 쏙 빠진 모습이죠. 사람에게 대면 기품있고 우아한 삶이 되겠습니다.
이들은 겉으로 희노애락을 나타내지 않습니다. 아주 세련되고 쿨하죠.
농민층이나 서민층의 꿈은 꼼므일포입니다.
이런 사람일수록 ‘부티’에 집착하죠. 진짜 부티나는 사람은 부티에
집착하지 않아요. ‘꼼므일포’가 아닌 사람들이 여기에 집착합니다.”

이반일리치의 죽음(창비), 톨스토이 죽음에는 인칭이 있다. 그의 죽음(3인칭), 너의 죽음(2인칭), 나의 죽음(1인칭). 1인칭의 죽음을 체험할 수 있는 공간이 문학이다. 독자들은 이반 일리치를 통해 ‘나의 죽음’을 1인칭으로 체험한다. 이반 일리치처럼 평생을 걸고 달려온 인생의 결론이 이렇다면, ‘가짜’라면 허무하다. 톨스토이는 죽는 자(이반 일리치)의 입을 빌어 이야기한다. 인간은 죽음 앞에서도 할 이야기가 있다. “자기 고통만 느낀 사람이 처음으로 주변 사람들을 돌아보기 시작한 겁니다. 누군가를 사랑하기 시작하면 그가 안쓰러워집니다.” “......죽음이 있던 그 자리에 빛이 있었다. 이렇게 좋을 수가!"(<이반 일리치의 죽픔> 작품 본문 중)” 이어령 원장은 끝으로 ‘메멘토 모리’를 말했다. 살아있을 때 우리는 ‘메멘토 모리(죽음을 기억하라)’ 해야 한다고. 그것이 생명을 살아가는 하나의 구호라고. 보통은 “화이팅~!”이라고 하는데 대신 “메멘토모리”라고 하는 게 어떻겠느냐고 제안했다. 여든이 넘은 노학자가 살아있는 이들에게 남기고 싶은 이야기는 명료하다. “지금 잘 나가도 우리는 죽습니다. 그 죽음을 기억해야 ‘진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출처 : http://pub.chosun.com/client/news/viw.asp?cate=C05&mcate=M1001&nNewsNumb=20140615046&nidx=15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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