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대산 상원사로 정진하러 가시던 중 6·25가
발발하는 바람에 남하하여, 경북 포항 인근 청하의
보경사에 머무르게 되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집니다.
그곳에서 하루 두 끼, 소금과 아주 소량의 밥만
드시며 하루 네 차례, 한 번에 두 시간씩 능엄주
정근을 이어가셨습니다.
이때의 능엄주는 성철 스님께서 지송하셨고
오늘날 널리 독송되는 긴 능엄주가 아니라,
비교적 짧은 능엄주였다고 합니다.
이러한 수행이 약 70일가량 지났을 무렵,
아랫마을 집집안의 일들이 마치 눈앞에 보이듯
환히 드러나고, 사람들이 나누는 말소리가
그대로 들렸으며, 병든 이를 보면 인체가
훤히 보이면서 병의 원인과 치료법까지
자연스레 알게 되었다고 합니다.
어떤 풀을 먹이면 낫겠다는 것, 지금은 멀쩡해
보여도 훗날 어떤 병이 발병하겠다는 것,
내일은 누가 찾아오고 언제 어떤 일이 일어나겠다
는 것까지도 분명히 알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에 스스로 ‘이것이 도인의 경지인가’ 하는
생각이 들어, 100일 회향을 마친 뒤 예산 수덕사
선원에서 만공 큰스님에 이어 조실을 지내신 바
있는 금봉 노스님을 찾아 상주 갑장사로 향해
그동안의 경험을 말씀드렸다고 합니다.
그러자 노스님께서는 “이런 마구니 같은 놈이
어디 있느냐!” 하시며 마치 죽일 듯이 달려드셨고,
“이런 것 떼어내는 일이 죽기보다 힘들다.
백일 동안 아무것도 하지 말고 나와 함께 지내자.”
하시며 곁에 머물게 하셨다고 합니다.
불교 수행의 과정에서 이처럼 식광(識光)이
발동하여, 일반인의 눈에는 신통과 같은 능력이
나타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경계에 걸려 허우적거리게 되면,
그것은 곧 사마외도로 빠지는 지름길이 된다고 합니다.
우룡 스님께서는 훗날, 그때 금봉 노스님의
준엄한 질책이 없었다면 분명 곁길로 빠져 삿된 길로
갔을 것이라 회고하셨습니다.
이로써 선지식의 가르침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깊이 새기게 된다고 말씀하십니다.
또한 후일에 이르러서는, 그 당시 금봉 노스님 곁에
더 오래 머물며 제대로 된 가르침을 받았더라면
수행에 있어 훨씬 더 큰 이익이 있었을 것이라고
말씀하신 것을 본 적이 있습니다.
불가에서 말하는 육신통(六神通) — 천안통, 천이통,
타심통, 숙명통, 신족통, 누진통 — 가운데, 오직
번뇌가 완전히 다한 누진통만이 귀할 뿐, 나머지
신통들은 모두 말변지사(末邊之事)에 불과하며,
결코 본분사(本分事)가 아니라는 가르침을 다시금
되새기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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